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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랑 소령3

‘1212’ 군사 반란, 단죄 못한 역사‥ 실제 인물 근황은?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실패의 기록입니다. 신군부는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단죄 없는 현실은 여전합니다. 전두환의 손자가 대신 속죄하고 있고 때아닌 파주 안장 논란까지 발생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실패의 기록..전씨 대신 손자가 속죄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봉 13일차, 12월 4일 현재 누적 관객수는 486만 명입니다.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46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개봉 2주차 관객이 더 늘어나면서 천만 영화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영화 서울의 봄은 실패의 기록입니다. 반란군은 권력욕으로 이글거리는데 비해 진압군은 답답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군사 반란 이후 신군부는 부귀영화를 .. 2023. 12. 6.
1212 진압 실패 이유‥장태완(이태신) vs 전두환(전두광) 1212 군사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전두환(전두광)의 신군부에 맞서 장태완(이태신)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본 헌병감이 분투했지만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반란 진압 결정적 기회 놓치다‥9공수의 부대 복귀 신군부에 맞선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육본 헌병감,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1979년 12월 12일 저녁 6시 30분경, 연희동의 한 요정에 함께 있었습니다. 작전명 '생일집 잔치'. 신군부가 자신들의 편이 아닌 3명의 장성들을 만찬을 이유로 유인해 발을 묶어 놓았습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정승화 총장의 납치소식을 보고 받고 부대로 급히 복귀했습니다. 휘하 4개 공수여단 중 1,3,5 3개 여단은 반란에 가담한 상황, 정병주 사령관은 경기도 부평에 .. 2023. 11. 27.
‘1212’와 실존 인물, 그리고 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군사 반란 속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꾸고 그날 밤 9시간을 현실과 상상을 뒤섞으며 그려냅니다. 1979년 12월 12일, 그날 밤 무슨 일이?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병주 특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했습니다. '1212 사태'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사건으로 실세로 떠오른 전두환은 이듬해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9월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시해한 1979년 10월 26일 사건, 이른바 10.. 2023.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