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2 1212 반란 요새 30경비단과 하나회, 장세동·박희도·최세창 1212 당시 반란군은 30경비단과 보안사를 지휘부로 이용했습니다. 30경비단은 정치군인들이 출세의 발판으로 거쳐 가는 곳이었고 특히 군내 사조직으로 말썽 많았던 하나회가 자리를 대물림 해왔습니다. 1212 군사 반란의 요새 '30경비단' 30경비단은 1212 군사 반란을 계기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식 명칭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30경비단입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모의하고 지휘하는 현장으로 사용됐습니다. 1212에 대한 검찰의 재조사 결과 군사 반란의 첫 모의는 12월 7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9사단장인 노태우는 외박을 나와 전두환 만났고, 두 사람은 12월 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국무회의가 12월 13일.. 2023. 12. 1. ‘1212’와 실존 인물, 그리고 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군사 반란 속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꾸고 그날 밤 9시간을 현실과 상상을 뒤섞으며 그려냅니다. 1979년 12월 12일, 그날 밤 무슨 일이?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병주 특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했습니다. '1212 사태'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사건으로 실세로 떠오른 전두환은 이듬해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9월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시해한 1979년 10월 26일 사건, 이른바 10.. 2023. 11.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