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군사 반란 속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꾸고 그날 밤 9시간을 현실과 상상을 뒤섞으며 그려냅니다.
1979년 12월 12일, 그날 밤 무슨 일이?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병주 특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했습니다.
'1212 사태'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사건으로 실세로 떠오른 전두환은 이듬해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9월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시해한 1979년 10월 26일 사건, 이른바 10.26 사태 이후 권력 공백기가 군사반란의 배경이 됐습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은 10.26을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습니다. 전두환은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사건 수사와 군 인사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었습니다.
정승화 총장은 전두환을 견제하기 위해 동해경비사령부로 보직 이동을 계획했고 장태완 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전두환에게 알려졌고 당시 9사단장이던 노태우 등과 모의해 정승화 총장을 강제 연행한 뒤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하고 거사일을 12월 12일로 정했습니다.
작전명 '생일집 잔치'.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것입니다. 12월 12일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허삼수와 우경윤 등은 저녁 7시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찾아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다며 조사에 응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총격전으로 장교 여러 명이 부상했고 정총장은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됐습니다.
신군부는 이 때 자신들의 반대파인 정병주 특전사령관,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육본 헌병감을 연희동 만찬에 초청해 발을 묶는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의 사후 승인 요청을 3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13일 연행을 재가했습니다.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신군부는 전방을 지키는 병력까지 빼내 한강다리 11개를 차단하고 서울 시내 주요 거점을 장악했습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총격전 끝에 부상을 입고 연행됐고 장태완 사령관도 새벽 3시 보안사로 연행됐습니다. 9시간여 만에 '1212 군사 반란'은 막을 내렸습니다.
배반의 밤 이 지난 다음날 정오, 군사반란의 주역들은 보안사에 모였습니다. 반란 성공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트렸고 보안사 건물을 배경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사진을 남겼습니다. 모두 34명입니다. 최고 선임자 유학성을 비롯해 중장 3명, 전두환 노태우 등 소장 5명, 별 하나 준장 6명까지 별을 모두 합치면 25개나 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50% 정도로 판단하고 대비했다고 합니다. 미 CIA가 8일 후인 12월 20일 작성한 '남한내 불안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는 특별 상황판단 보고서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한때 신군부와 미국간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미국은 결국 반란을 묵인했습니다.
이후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 내란방조죄로 10년 형을 선고받았고 측근들은 모두 80년 1월 예편됐습니다. 반면 전두환, 노태우 등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주도 세력은 모든 군 요직을 차지했고 5.17 계엄 확대, 광주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 등을 통해 5공화국 군사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반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하고 1212에 대해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1212 군사 쿠데타 실존 인물과 출연진
격랑의 그날밤 권력욕의 신군부와 본분에 충실하고자 했던 군인들이 격돌했습니다. 관련된 실존 인물 16명의 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❶ 정부 관계자
최규하 대통령 | 최한규 |
□ 제10대 대통령 정승화 총장 체포의 불법성 기록 |
□ 정동환 배우 |
노재현 국방장관 | 오국상 |
□ 당시 국방장관 유혈 충돌 방지 내세워 쿠데타 저지 못했다는 비판 받음 |
□ 김의성 배우 |
❷ 신군부 핵심 6명
전두환 | 전두광 |
□ 당시 보안사령관 11대,12대 대통령 |
□ 황정민 배우 |
노태우 | 노태건 |
□ 보병 9사단장 13대 대통령 |
□ 박해준 배우 |
장세동 | 장민기 |
□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 대통령 경호실장 13대 안기부장 전두환 정권의 실질적인 2인자 |
□ 안세호 배우 |
허삼수 | 하창수 |
□ 보안사 인사처장 허화평,허문도와 함께 전두환 정권 쓰리 허로 불림 1988년 13대 총선 부산 동구에 민정당 후보로 출마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 1992년 14대 총선 민자당 후보로 출마 당선 |
□ 홍서준 배우 |
허화평 | 문일평 |
□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1992년 14대 총선 포항에서 무소속 출마 당선 1996년 옥중출마 당선됐지만 군사반란죄로 상실 |
□ 박훈 배우 |
이학봉 | 임학주 |
□ 보안사 수사과장 1988년 13대 총선 김해에서 민정당 후보로 당선 |
□ 이재윤 배우 |
신군부는 요직을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5공과 6공을 거치면서 대통령 2명, 안기부장 2명, 육군참모총장 2명, 장관 4명, 국회의원도 8명이 나왔습니다.
❸ 신군부에 반대한 군인과 잊혀진 죽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
정상호 |
□ 당시 육군 참모총장 계엄사령관 신군부에 의해 이등병으로 강등,예편 88년 11월 계급 환원 |
□ 이성민 배우 |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
이태신 |
□ 당시 수경사령관 신군부 반란군에 맞서 항전 80년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 2000년 16대 총선 민주당 비례로 당선 |
□ 정우성 배우 |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
김준엽 |
□ 부하에게 전두환 체포 명령 최규하 대통령 구출 시도 실패 |
□ 김성균 배우 |
정병주 특수전 사령관 |
공수혁 |
□ 9공수여단으로 군사반란 막으려 했던 비운의 특전사령관 부상 입고 체포 88년 10월 실종 뒤 5개월 만에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 |
□ 정만식 배우 |
김오랑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
오진호 |
□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 저지 과정에서 35세 일기로 사망 |
□ 정해인 배우 |
김인선 참모총장 경호장교 |
권형진 |
□ 참모총장 체포 저지과정에서 10여발 총상 |
□ 이준혁 배우 |
정선엽 병장 | |
□ 국방부 헌병대 소속 신군부의 국방부 점거과정에서 총격전으로 사망 |
|
박윤관 일병 | |
□ 수경사 33헌병대 소속 소속부대가 반란군에 포함 총장 공관 초소에서 사망 |
영화 '서울의 봄'‥악당의 승리는 영원하지 않다
영화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을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탐욕의 덩어리가 탄생한 날' 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적 야심과 권력욕에 가득 찬 악당들이 그날밤 승리하면서 우리 현대사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겁니다.
서울의 봄은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입니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첫 총탄이 발사된 그 날 저녁 7시경부터 신군부가 반란에 성공하며 승리를 확신했던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러닝타임 141분에 담아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전두광, 노태건, 최한규, 정상호, 김준엽처럼 조금 달라졌을뿐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의 아픈 역사입니다.
저 순간 무언가 하나만 달라졌더라면 하는 바람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질 않습니다. 영화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악당들이 승리를 거둔 것 같지만 결국 역사는 이들을 단죄했습니다. 끝까지 싸우고 기록하고 증언을 남긴 이들 덕분에 마침내 반란죄와 내란수괴죄가 입증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봄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 후속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산의 부장들과 바로 이어지는 시간선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김재규 중정부장이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방향을 바꾸면서 체포되고, 영화 서울의 봄은 그 직후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44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역사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영화는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하고 몰랐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2023년 부진했던 우리 영화계에 흥행 구원 투수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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