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작품 '행복의 나라'가 개봉했습니다. 10.26 당시 중앙정보부장 수행 비서관이었던 실제 인물 박흥주 대령과 변호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출연진과 실제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0.26 사건 재판을 그린 '행복의 나라'
영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역사적 사건이 배경입니다.
10.26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제작됐습니다. 익히 잘 알려진 작품은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2020년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한석규 배우)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 중정부장(이병헌 배우)이 중심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때 그사람들 |
남산의 부장들 |
△2005년 개봉 블랙코미디 영화 △감독 임상수 △주연 한석규(주과장) 백윤식(김부장) △ 궁정동 안가에 연예인을 데려오는 채홍사 역할을 담당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를 모티브로 한 주과장의 시선으로 영화 전개 |
△2020년 개봉 △감독 우민호 △주연 이병헌 (중정부장 김규평) 이성민(박대통령) 곽도원 (전 중정부장 박용각) △ 1970년대 말 미 하원 청문회부터 10.26까지 40일간 벌어진 일들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 |
이번 '행복의 나라'에서는 중앙정보부장의 수행 비서관이었던 박흥주 대령이 중심인물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박태주라는 인물로 이선균 배우가 역할을 맡았습니다. 흥미롭게도 10.26의 적극 가담자 3명이 각각 다른 영화를 통해 한 번씩 중심인물로 등장했습니다.
10.26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변호인단이 꾸려지지만 현직 군인으로 사형 위기에 처한 박태주의 변호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출세를 노이는 정인후(조정석 배우)가 변호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정인후는 재판을 이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합동수사단장 전상두(유재명 배우)는 감청을 통해 재판을 좌지우지합니다. 박태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입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습니다.
박태주 측 인물 | ||
정인후 (조정석) |
△ 1918~2012 대한광복군 출신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정인후의 실제 인물 박흥주의 변론을 맡은 사선 변호인 △ 이승만,박정희, 전두환 시절 시국사건 수임 인권변호사 |
태윤기 변호사 (박흥주 대령 사선 변호인) |
박태주 (이선균) |
△ 1939~1980 육사 18기 중정 수행비서관 (대령) △ 80년3월6일 33사단에서 사형 집행 경기 포천시 재림공원묘지 안장 |
박흥주 대령 (중정 수행비서관) |
김영일 (유성주) |
△ 1924~1980 경북 선산출신 안동농림고 육사2기 (박정희와 동기) 6사단장 초대 보안사령관 건설부장관 8대 중정부장 △ 재판 당시 부하들만은 살려줄 것을 호소 부하들의 유족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눠줄 것을 당부 |
김재규 (중정부장) |
이만식 (우현) |
△ 1940년생 홍익법무법인 대표 △ 김재규와 박흥주 등의 변론을 맡은 국선변호인 대표 (변호인단 7명) △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2017년 6월 출간 |
안동일 변호사 (변호인단 대표) |
정진후 (이원종) |
△ 1929~2002 육사 5기 22대 육참총장 △ 1212 군사반란으로 해임 이등병 강등 신군부에게 고문, 수사받음 |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
전상두와 군사법원, 검찰 인사 | ||
전상두 (유재명) |
△ 1931~2021 육사 11기 보안사령 1970년 10월 합동수사본부장 △ 11,12대 대통령 1995년 문민정부 반란수괴죄 등으로 기소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 사면(97.12) |
전두환 |
진태곤 (김재철) |
△ 1934~2018 당시 보안사 대공수사과장 전두환 정부 초대 민정수석 △ 신군부 범죄기획의 주범 중 하나 △ 13대 총선 김해 당선 (민정당) |
이학봉 (보안사령부 과장) |
김영현 (김법래) |
△ 1932~2011 육사 7기 9사단장 합동참모본부장 11,12,13대 민정당 국회의원 △ 10.26사건 군사 재판장 외부에서 쪽지 받아 재판 진행 |
김영선 (10.26사건 재판장) |
백승기 (최원영) |
군 검찰단 |
옥정애 (강말금) |
△ 남편 박흥주 대령과 슬하 1남 2녀 (10.26 당시 아들은 8개월) △ 압구정동에서 칼국수집 운영 |
김묘춘 (박흥주 아내) |
조순정 (진기주) |
△ 영화 속 가공 인물 정인후 (조정석)의 여자 친구 능통한 일본어 실력으로 외신기사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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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룡 (박훈) |
△ 1212 당시 정승화 총장의 수행 부관 △ 신군부의 참모총장 연행에 대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여부 확인하려다 권총 사격받고 부상 |
이재천 (육참총장 수행부관) |
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과 영화 속 사실과 허구
박흥주 대령은 육사 18기 출신입니다. 1962년 포병 소위로 임관해 6사단 전포대장을 맡았는데 당시 사단장인 김재규가 젊고 유능한 박흥주를 전속 부관으로 데려오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김재규는 부대를 옮길 때마다 데리고 다니다시피 함께 근무했는데 보안사령관 시절에는 506보안부대 수경사반장, 영등포팀장을 거쳤고 육군대령으로 진급한 후 1978년 4월 중앙정보부장 수행 비서관이 됐습니다. 당시 팀스피리트 육군 담당 장교로 복무중이었는데 김재규가 중정으로 호출한 겁니다.
박흥주는 육사 동기생 중에서 가장 먼저 진급하고 위세 등등한 중정부장 비서관으로 잘 나가는 군인이었지만 산동네(성동구 행당동) 12평 집에서 살았고 그의 집안이나 친구들 누구도 덕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중정으로 간지 1년 6개월 뒤 박흥주는 운명의 10.26을 맞이했습니다. 당일 안가에서 김재규로부터 거사 계획을 듣고 대통령 경호원을 사살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며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자신의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10.26의 주범인 김재규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공범인 박흥주에 대한 재판은 불과 16일 만에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1979년 12월 4일 시작된 재판은 12월 20일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재판이 졸속으로 진행되었다고 비판받는 큰 요인입니다. 주범에 대한 재판이 끝나기 전에 공범, 아니 지시에 따른 종범의 사형을 집행해 버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김재규에 대한 재판도 속전속결로 진행됐습니다. 3심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70일입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1심 사건 평균 9개월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빠른 진행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박흥주는 당시 현역 군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3심제가 아니라 단 한번의 선고로 형이 확정되는 단심제가 적용되었습니다. 변호인단은 단심제의 위헌성과 내란을 목적으로 한 살인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우며 변론을 진행했지만 재판부는 비상계엄 아래서 군인에 대한 범죄에 관해 단심제를 규정한 군법회의법은 위헌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변론을 맡은 정인우(조정석 배우)는 실존의 역사에 상상력과 허구를 가미해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실제 사선 변호인은 태윤기 변호사였고 안동일, 신호양, 신선길, 정상용 변호사가 국선 변호인으로 변호인단에 참여했습니다.
정인후 변호사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는 것, 골프 연습을 하는 전상두에게 무릎을 꿇고 선처를 비는 장면은 실제가 아닙니다. 안동일 변호사는 2024년 7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보안사가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을 세세하게 거론하면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점만 밝히겠습니다.
중앙일보 기사(24년7월12일) 바로가기 |
기사 내용 중 일부 |
영화 관람 포인트와 손익분기점
행복의 나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야만적 시대상을 그려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실제와 허구를 원칙 없이 마구 섞어 결국은 역사적 실체를 왜곡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처럼 당시 역사를 잘 몰랐던 20~30대에게 역사는 알려주는 것으로, 40대는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로, 50대 이상에게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 그리고 경험했지만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스크린을 통해 알게 되는 관람 포인트가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은 약 270만명입니다. 박스오피스 8월 25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은 61만여 명, 흥행 순위는 6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감상평은 도룡뇽 아버지(유재명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해 암울한 역사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이 된 이선균 배우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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